[사설] 1분기 1.3% 깜짝 성장, ‘3고 위기’는 이제부터다

[사설] 1분기 1.3% 깜짝 성장, ‘3고 위기’는 이제부터다

이진국 0 2 04.28 04:11
한국은행이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3%라고 25일 발표했다. 2021년 4분기 1.4% 이후 2년3개월 만에 가장 높은 분기 성장률에 기획재정부는 성장경로에 선명한 청신호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절대 안심할 단계가 아니라는 건 정부가 더 잘 알 것이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중고와 서민 경제의 경고음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1분기 ‘깜짝 성장’은 반도체와 휴대전화를 중심으로 늘어난 수출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 속엔 ‘반도체 착시’ 효과가 크다. 지난해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무역수지는 168억달러 흑자이지만, 반도체를 제외하면 319억달러 적자다. 특히 달러당 1400원을 육박하는 환율은 수출 대기업에는 유리하지만 물가 상승과 내수 위축이란 역효과가 크다. 이날 발표된 SK하이닉스 1분기 영업이익은 2조8860억원으로 분기로는 역대 두 번째로 높았는데, 이처럼 대기업이 거둔 실적 온기가 바닥으로 퍼지지 않는 것도 고환율 때문이다. 고환율은 국민 돈으로 대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효과가 있다.
체감 경기가 바닥인데도 1분기 민간소비가 0.8% 증가한 것은 워낙 위축된 이전 분기와 대비된 기저효과 때문이다. 반대로, 중동 분쟁으로 인한 유가 상승과 고환율이 더해져 물가엔 비상등이 켜졌다. 이미 총선 전 가까스로 눌러놨던 각종 공공요금과 식료품 가격 인상이 도미노처럼 퍼지고 있다. 내수의 또 다른 복병인 고금리 상황도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2월 말 은행 연체율은 5년 만에 가장 높은 0.51%를 기록했다.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이라는 가계부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금리 인하가 시급하지만 고물가와 경기침체에 발목이 잡혀 있는 셈이다. 여기에 부동산 경기 위축에도 신규 아파트 분양가는 치솟고, 기존 주택의 전월세 가격 상승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래서야 과연 내수가 회복될 수 있겠는가.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삼각 파도는 이미 서민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위기의 파고가 어디까지 높아지고 파장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 이 위기를 넘어설 경제 정책이 시급하지만, 세수 펑크와 재정 적자로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은 뚝 떨어져 있다. 경제 양극화로 커진 서민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자감세 같은 낡은 정책 기조의 대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위기는 정점으로 가고 있고 대응할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다.
17세기 이후 영국 가난한 자유민도시로 몰려들어 가사 도맡아한국도 1970년대까지 식모 존재월급 높아지며 자연스레 소멸
집안‘일’은 늘 누군가의 족쇄정부, 외국인에게 떠넘길 계획
폭탄 돌리기로 해결 못할 문제서로 도울 수 있는 ‘여유’ 필요해
근래 ‘외국인 가사노동자’ 이슈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건데요.
핵심은 ‘가격’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임금이 월 100만원 정도 되면 정책 효과가 있다며 외국인 가사노동자 최저임금 미적용을 주장해왔고, 지난 3월 한국은행 보고서 발간 직후 (높은 가격으로 인해 가사도우미 고용이) ‘그림의 떡’이 되어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를테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떡’이 돼야 한다는 거죠. 윤석열 대통령 역시 지난 4일 외국인 가사노동자와 관련해 가정 내 고용으로 최저임금 제한도 받지 않고 수요·공급에 따라 유연한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고요.
그림의 떡이라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비유를 들으며 생각합니다. 가사노동의 가격을 낮추면 해결되는 일일까요? 왜 가사노동이 몹시 중요한 일인 걸 모두가 알면서도 그건 한사코 ‘싼값’이어야만 하는 걸까요? 가사노동은 지금까지처럼 그저 ‘누군가’에게 헐값에 떠맡겨버리면 되는 일일까요?
매력적인 건 당연하다, 하인의 시대
우선 ‘싼값 가사노동자’를 구하는 것은 당연히 고용주의 입장에선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왜냐면 그것은 불과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너무나 당연한 ‘올드노멀’이었거든요. 실제로 1851년 런던의 젊은 여성 인구 중 3분의 1은 하인이었다고 하고요. 아무리 가난한 사람들도 하인을 두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At home>는 미국 논픽션 작가 빌 브라이슨이 쓴 책입니다. 주로 18~19세기 영국과 미국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요. 다만 이 책의 가장 독특한 점은, 흔한 산업혁명 등 근대사 이야기를 철저히 ‘집 안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이죠. 빌 브라이슨이 이 책에서 강조하는 핵심 메시지는 우리가 친숙하게 누리고 있는 엄격한 위생기준, 집 구조 등 대부분의 사생활은 거의 모두 근대의 발명품이라는 것이고요. 이 책에서 가장 존재감이 큰 근대의 발명품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집안일’과 ‘하인’이죠.
우선 ‘집안일’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자면,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위생 및 영양, 양육 등의 기준은 불과 1~2세기 전에는 당연한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독자님들 가운데 1년에 한 번 목욕을 하거나, 청소를 1년에 두 번만 하는 경우는 없으실 테니까요. 예방의학, 공중위생 등의 덕도 보았지만 무엇보다도 가정에서 부지런히 영양을 신경 쓰고 청결을 유지한 덕분이죠.
이에 대해 루스 코완은 가사노동자들이 깨끗한 욕조, 화장실, 세면대를 소비한 것이 아니라 생산해왔다고 말하기도 했죠. 이런 높은 위생 기준 등을 유지하기 위한 ‘촘촘한 가사일’이 탄생한 것, 그것도 상류층뿐 아니라 중류층 이하에게까지 보편화된 것은 분명 ‘대단한 근대의 발명’이라고 할 만한 것입니다. 1930년 미국의 한 잡지에선 현재 주부들은 (…) 할머니 시절에는 봄에 한 차례 대청소 때까지 남겨놓았을 먼지들을 매일 닦아내고 있다고 하기도 했죠.
근대에 탄생한 까다롭고 복잡한 ‘집안일’을 가능하게 했던 핵심은, ‘하인’의 존재였습니다. 빌 브라이슨은 이 책에서 심지어 근대를 하인의 시대!라고 정의할 정돈데요. ‘대체 왜 하인이 ‘근대의 발명품’이야?’라며 갸우뚱하실 수도 있습니다. 요는, 근대 이후 ‘일반 자유민’이 이렇게 많이 다른 사람의 지붕 아래서 일한 적이 없다는 건데요. 원래 역사적으로 종, 하인을 두는 건 소수 상류층의 특권이었지만, 18~20세기 초엔 아무리 여유가 많지 않은 중류층이라고 하더라도 하인을 3~4명 두는 것이 기본이라고 할 정도였다고 하니까요. 마치 오늘날 우리가 가정에 냉장고, 세탁기, 식탁 등을 으레 갖추어 두듯요.
빌 브라이슨은 이에 대해 (근대는) 그야말로 하인의 시대라고 할 만했다며 당시의 각 가정에서 하인을 두었던 것은, 오늘날 각 가정에서 이런저런 생활용품을 구비하고 있는 것과 유사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19세기 중반의 영국에선 연 수입이 150파운드(현재 가치 약 3000만원) 정도인 사람도 ‘다용도 하녀’를 고용할 정도는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은 비교적 최근인 1960~1970년대까지만 해도 ‘식모’가 꽤 흔했죠. 조사에 따르면 1970년대 초 서울의 가정 10가구 중 약 3가구(31.4%)가 ‘식모’를 두었다고 하네요. 그다지 머지않은 ‘올드노멀’이라 할 만합니다. 정찬일이 쓴 <삼순이>는 우리나라의 ‘식모’ 등 근현대 시기 여성들이 주로 종사했던 직업의 역사를 다룬 흥미로운 책인데요. 19세기 노비 세습제 폐지 이후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을 거쳐 ‘식모’라는 직업이 우리나라에서도 ‘발명’되고 또 보편화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1960년대에는 밥만 굶지 않고 사는 서울의 가정이면 모두 식모를 두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서울 성북구의 한 표본조사에 의하면 셋방 사는 가구의 7할5푼(75%)이 식모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이쯤에서 두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그리고 ‘하인의 시대는 왜 끝났을까?’
‘가난한 일꾼’의 무한 공급: 사람 아래 사람
핵심부터 말하자면, ‘사람 아래 사람(下人)’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빌 브라이슨에 따르면, 근대 영국에선 17세기 이후 토지 수탈, 농업 등 모든 분야의 기업화, 산업화로 인해 대부분의 서민들이 적당히 자급자족하며 도란도란 사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고향을 떠나 ‘자발적으로 쥐꼬리 임금을 받고서라도 일하고자 하는 가난한 뜨내기들’이 도시로 물밀듯 쏟아져 나왔다고 하는데요. 이처럼 유례없이 풍부한 ‘빈민 공급(!)’으로 인해 이전에는 극소수 귀족들만의 특권이었던 종, 하인을 두는 것이 중하류층에게까지 보편화될 수 있었다는 거죠.
이런 설명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놀라울 정도로 똑같습니다. <삼순이>에서 정찬일은 말합니다. 전 가구의 30퍼센트 이상이 식모를 두는 현상 (…) 이에 대한 답은 수학 문제의 답처럼 명확하다. 식모들의 인건비가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식구 중 한 입이라도 덜고,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하는 구직자들이 너무나 많았다. (…) 어린이들까지 이 대열에 합류했다. 당시 가난한 여성들에게, 밥 굶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그리고 최후의 방책이 식모살이뿐이었던 거죠.
이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일제강점기 토지 수탈, 기록적 가뭄, 전쟁 등으로 인해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식모의 공급은 ‘풍요로워’졌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많은 가정은 싼값에 마구 식모들을 여럿 부릴 수 있게 됐죠. 1957년 한 잡지는 식모 자리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니 식모를 구하기 쉬운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것은 당연했다며 동난(動亂·6·25전쟁)이 가져온 선물 중의 하나로 어느 가정이나 식모를 두었다는 것을 들어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는 물론 단칸 셋방살이, 판잣집 살림에도 환경과 가정 형편은 염두에도 없다는 듯이 서로 다투어 너도 나도 식모를 두고 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이어, ‘하인의 시대는 왜 끝났을까?’라는 질문입니다. 그간 과연 오갈 데 없는 빈민을 거두어 먹여주었으니 윈윈이었을까요? 푼돈이라도 받을 수 있었으니, 식모들은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살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식모들은 ‘값싼 허드렛일’을 하는 자로서 많은 경우 모진 수모와 모욕을 당했고, 하루에도 15시간을 일하고 언제든 주인이 부르면 가는 ‘대기 중’이어야 했습니다. 이때 노동의 ‘싼값’과 ‘인간적 모욕’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긴밀하게 붙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애초에 보잘것없는 노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하대가 있었기에 저임금으로 부릴 수 있었고, 언제든 해고가 가능했으며, 이는 인격을 철저히 무시하는 것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현재진행형인 홍콩,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인권침해 사례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하녀들은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일을 했고요. 일상화된 차별이 아이들에게도 좋은 교육적 효과를 미쳤을 리 없습니다. 심지어 1956년의 한 언론사 설문조사에서 ‘식모나 사동보다 강아지를 더 우대하는 것은 정당하다’라는 질문에 무려 45%나 되는 대학생이 ‘그렇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1970년대 이후 여성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식모’라는 단어 대신 가정부(家政婦), 파출부 등의 명칭으로 대체되고 월급이 높아지자, 자연스레 ‘하인의 시대’, 인간 아래 인간으로 운영·유지되어온 시대가 문을 닫게 됩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대하자는 데에 대한,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하인은 정말로 사라졌는가?
하지만 진짜 문제는, 오늘날 ‘하인’이 사라진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하인이 사라진 시대에, 사람들은 기존에 하인이 하던 모든 일을 기계나 시스템이 자동으로 한다고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가사(세탁, 청소 등)를 기계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거나 기준이 높아지면서 일 자체가 더 복잡해진 문제도 있긴 합니다만, 가장 중요한 건 과거에 비해 비중이 커진 ‘가정 내 양육 및 돌봄’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보이지 않는 노동’ 취급을 당하며, 그간 가정 내 누군가가 무임금으로 혹은 저임금 허드렛일로 떠맡아온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짧게 살펴볼 매들린 번팅의 책 <사랑의 노동>의 부제는 ‘가정, 병원, 시설, 임종의 침상 곁에서 돌봄과 관계와 몸의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가정 등 사회에 ‘돌봄’이 존재하는 곳들을 찾아다니며 돌봄을 주고받는 이들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듣는데요. 이 책에서 제가 가장 주목한 대목은 20세기 중후반, 하인이 사라졌지만 이들이 하던 일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고 대신, 비가시화되었다는 점입니다.
번팅은 하인이 사라지면서 20세기 중반 이후 중산층 여성은 가내에서 수행해야 하는 돌봄 임무를 온전히 맡아 하게 되었다며, 가사노동은 통상 청소기, 세탁기 등이 대신 해준다고 ‘오해’하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애초에 여성이 집에서 정확히 어떤 일을 해왔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더 이상 돌봄노동이 ‘없는 것’ 취급을 당하고 저평가되는 추세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저평가된 돌봄을 제자리에 올려두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하죠. 이는 당연히 정당한 임금 등의 경제적 문제를 포함하고, 또 우리 모두가 돌봄의 업무를 나누었어야 한다는, 수백년 넘은 과오를 바로잡는 일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허리 위에 올라가 편하게 누렸던 과거는 모두가 행복한 풍경이 아니었으니까요.
맺음말
오늘날, 사람들이 너무 많은 가사노동에 지쳤습니다. 버거운 게 당연합니다.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하인까지 두어가며 달성했어야 하는 ‘기준’인데 이제는 출퇴근까지 하면서 일과 가정, 육아를 도맡아야 하는 ‘슈퍼우먼’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저출생 문제는 둘째 치고라도, 제대로 된 삶을 살 수조차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대체로 ‘윗분’들이 ‘사람 아래 사람’을 다시 동원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방법(올드노멀)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오늘 레터를 쓰면서 ‘올드노멀’이라고 생각했던 ‘하인의 시대’는 어쩌면 옛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돌봄, 가사노동의 특성상 갑자기 ‘없던 것이 뿅’ 생겨나지 않을 텐데,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간(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그 일을 간신히, 보이지 않게 떠맡아 온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니까요. ‘싼값’에 처리해도 될 일 취급을 받는 일을 버티며 해온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질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약 저평가받아온 일들, 그런 일을 가까스로 떠맡아온 사람들이 있다면 과연 오늘날에 ‘하인’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가사노동이 결과적으로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독박 노동’이 되지 않는 세상, 먹고살기 위해 삶을 축내는 대신 서로 돌볼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세상을 떠올려 봅니다. 또한 그런 방향이야말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진정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직업 훈련 중인 발달장애인 A씨는 평일 7시간 정도를 서울 종로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에서 보낸다. 동료 5명과 5교시까지 수업을 들으며 점심을 먹고 집에 가기 전에 간식 시간도 갖는다. 사회로 나가는 길목인 센터에서 어울려 사는 하루를 적응 중이다.
수월한 날도 있지만 힘든 순간에 그는 스스로 머리를 때리기도 한다. 특수교육에서 도전적 행동이라고 부르는 문제행동이다.
25일 서울시에 따르면 센터 교실을 폐쇄회로(CC)TV 녹화분으로 관찰한 세브란스병원 발달장애인거점병원·행동발달증진센터의 진재연 행동치료사는 이를 ‘출근 스트레스’로 판단했다. 행동이 주로 오전에 나타나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A씨가 센터에 도착하면 돌봄교사들이 크게 행동을 제지하지 말고 집이 아닌 공간에 익숙해지도록 시간을 주라고 조언했다. 이에 행동 빈도가 줄어드는 효과로 이어졌다고 한다.
진 치료사는 발달장애에서 자해·타해 등 행동은 감각 추구와 거부·관심 등의 표현이라며 발달장애인 입장에선 의사소통하려는 것인데, 행동에 대한 개입과 중재를 하려면 돌봄교사와 면담 등으로 전후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A씨에 대한 개입이 바로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행동 빈도를 분석한 데이터가 이미 확보돼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SKT는 발달장애 행동 중재를 위한 협업을 통해 인공지능(AI) 기술로 도전적 행동의 통계를 내는 시스템을 올해 시범 도입했다. SKT 측이 개발한 ‘비전 AI 케어’ 프로그램을 평생교육센터 현장에 적용해 전문가 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서울시가 지원했다.
AI는 CCTV를 통해 자동으로 센터 각 교육생의 행동을 인식하고 기록한다. 발차기·주먹질·밀고당기기·쓰러짐·머리때리기(자해)·눕기·달리기·배회하기·점프 등 9가지를 구분한다. 행동별로 하루·일주일·한 달 단위 빈도를 모으면 도전적 행동이 나타나는 시점과 전후 관계를 특정할 수 있다. 치료사는 빈도와 지속 시간, 장소별 패턴과 실제 현장 영상을 보며 진단을 내리고 개입 방식을 결정한다.
발달장애 전문 의료진이 적은 국내 상황에서 이 같은 행동진단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국제행동분석가(BCBA)는 300명 정도에 그치고, 전국 발달장애인거점병원은 12곳뿐이다. 그마저 서울에 3곳이 몰려 있어 상담 대기자가 1000명이 넘는 병원도 있다.
신건철 종로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장은 치료사의 면담과 개입으로 도전적 행동이 완화되면 교사들의 돌봄 부담도 낮출 수 있다며 발달장애 전문 인력이 적은 상황에서 AI가 조력자로 의료 접근을 확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AI가 처방을 내릴 수는 없지만 인간이 관찰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돌봄과 치료를 위한 기회와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AI가 전체 관찰 시간 중 개입이 필요한 부분만 골라내 표시하면 7시간 분량의 CCTV 녹화분을 봐야 하는 작업이 단 5분으로 단축된다. 행동치료사가 더 많은 장애인의 도전적 행동을 확인해 진단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올해 종로·도봉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에 시범 도입한 성과를 분석해 확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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